[청강열전]01. 2006 이나래 : 정서적 교감과 성장을 그리는 ‘허니블러드’

정서적 교감과 성장을 그리는

이나래의 ‘허니블러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2013)의 주인공 도민준은 외계인이었고, ‘도깨비(2016)’에서 공유가 연기한 김신은 900살이 넘은 도깨비였다. 인간을 까마득히 앞선 초월적 능력을 지닌 남성과 평범한 여성을 매칭한 로맨스물이 트랜드로 자리잡았던 2010년대, 이미 남자 주인공 역할에는 파워인플레가 극심해서 실장님이나 재벌2세 정도로는 주인공 명함도 내밀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다.

같은 시기 카카오페이지 웹툰에서 조회수 1위를 달리고 있던 이 작품 역시 겉으로 보기엔 수세기를 살아온 뱀파이어와의 로맨스라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콘텐츠 시장의 흐름에 정확히 올라탄 만화로 보였다. 2016년 대한민국콘텐츠대상에서 만화대상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나래 작가의 ‘허니블러드’다.

 

‘쓴 약을 삼키게 하려면 그 위에 달콤함을 덧입혀야 한다’

예전에 선배 작가로부터 들은 말인데, 그가 말한 쓴 약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고, 달콤함은 이를테면 장르적 쾌감이라 하겠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소비자들은 교훈을 얻기위해 만화를 읽거나 영화를 보지 않는다. 그들은 로맨스의 달콤함이나 액션의 호쾌함, 스릴러의 긴장감을 즐기기위해 콘텐츠를 향유한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대중예술을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면, 그만큼이나 장르적 쾌감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허니블러드’의 가슴 설레는 로맨스는 작가 이나래가 말하고자 하는 달콤하지만은 않은 성장서사를 독자에게 전달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치로 기능한다.

 

‘허니블러드’는 마녀사냥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즌 1의 마녀사냥은 학원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무당의 딸인 내림은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있다. 어린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온 친구가 사실은 따돌림의 주범이고 어른들은 이 상황을 못본 척 애써 외면한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이런 지옥같은 나날 속에서 내림은 뱀파이어 페테슈를 만난다.

쉽게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초월적 존재 페테슈는 그러나 장르공식대로 그 강력한 힘을 발휘해 내림을 구원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는 집에서 지친 내림을 반가이 맞아주고 정서적 버팀목이 되어준다. 먹이를 주고 지낼 곳을 마련해주고 정서적 교감을 통해 치유의 에너지를 얻는, 마치 주인과 반려동물 같은 둘의 관계는 이들을 잇는 붉은 실과 방울이 달린 목걸이로 시각화된다. 내림은 페테슈와 주변인들로부터 힘을 얻어 마침내 자신의 의지로 괴롭힘에 당당히 맞서는 용기를 낸다.

시즌2에서 다루는 마녀사냥은 보다 직접적이다. 수 세기 전 유럽에서 있었던 종교적 광기와 사람들의 욕심으로 마녀를 잡아 불태우던 문자 그대로의 마녀사냥이다. 그 직접적 피해자인 페테슈와 록산나는 뱀파이어가 되어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이후 인간이 되어 속죄하는 길을 택한 페테슈와 달리 여전히 세상과 인간에 대한 증오만으로 움직이던 록산나는 마침내 서로 다른 결말을 마주한다.

이 과정에서 내림과 페테슈는 각자의 상처를 마주하고 한걸음 나아갈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서로에게 강력한 정서적 공감과 지지를 보여준다.

작중 주인공 내림을 좋아하는 효열의 대사처럼 사람은 스무살이 되었다고 해서 피카츄가 라이츄로 진화하듯 갑자기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 눈을 돌리고 싶던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사람은 성장해 간다.

성장을 위해 비릿한 피냄새가 나는 곪은 상처를 마주하는 고통스러운 용기를 보여주는 만화, 그리고 그것이 너무 입에 쓰지 않도록 꿀처럼 달콤한 환상적 로맨스가 함께하는 만화, 인물의 성장과 장르적 쾌감 두 마리 토끼를 능숙하게 잡아내는, 작가 이나래의 대표작 ‘허니블러드’다.


양세준(웹툰만화콘텐츠전공 교수, 만화가)




이나래 작가 인터뷰


약력

2002년 : 대원씨아이 삽화가 데뷔

2006년 : 코믹무크지 에로틱 단편 <님포마니아> 발표

2007~2008년 : 일간스포트 웹툰 <견제남녀> 연재.

2008~2010년 : 학산문화가 <스위티 밀키 프로포즈> 연재.

2008~ : 현재 미국 옌프레스 <맥시멈 라이드> 연재 중.

2009년 : TV 애니메이션 <기가트라이브> 캐릭터디자인.

2010년 : 웹 잡지 툰도시 단편 <29월> 발표

2013년 : 자랑스러운 전문대학인상 수상.

2014년~2017년 : <허니 블러드> 연재.

2014년 : 제7회 여성문화인상 <신인여성문화인상> 수상.

2015년 : 피키툰 단편 <양계백숙> 발표.

2016년 :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만화부문 장관상.

2019~2022년 : 한국만화가협회 이사.

현 서울웹툰아카데미 출강 중.


🎤 <월간 CKMC> 구독자 여러분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과 06학번으로 미국에서 미국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맥시멈 라이드> 만화와 카카오페이지 <허니 블러드> 웹툰을 연재한 만화가 이나래입니다.


🎤 요즘 어떤 작업 하고 계시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 현재 미국 옌프레스와 출판과 웹툰을 동시에 발표할 수 있도록 신작을 준비 중입니다. 부수적으로 서울웹툰아카데미에서 프로젝트수업을 맡고 있으며, 일러스트 전시 및 팬시굿즈 기획, 사업 또한 준비 중입니다.


🎤 지난 2014년 연재를 시작한 웹툰 <허니 블러드>는 카카오페이지 웹툰 1위를 차지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탄생 배경을 소개해주신다면요?

💬 <허니 블러드>는 아직 발표하지 않은 저의 작품의 세계관에서 프리퀄로 만들어진 단편작품을 토대로 기획되었습니다. 연재하던 당시 지금과 달리 한국 웹툰계에서는 로맨스 장르가 매우 비주류였기 때문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한 ‘비주류 장르 콘텐츠 지원사업’을 통해 제작된 작품이에요. 본래 원작 단편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으나 한국 정서에 맞는 작품으로 각색하면서 지금의 <허니 블러드>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 웹툰 <허니 블러드> 창작에 있어 시각적 요소(그림체, 색채, 연출 등)와 문학적 요소(인물, 사건, 배경 등)에 있어 각각 역점을 두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 그림체는 당시 제가 흑백만화와 함께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본래 가진 제 그림체보다 많은 부분과 펜선을 최대한 간소화하고, 진행했습니다. 연출은 출판작업물에서 웹툰으로 편집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기 때문에 횡으로 자주 연출하던 부분을 수직으로 컷 구성을 바꾸어 콘티를 짰습니다. 같은 출판형을 갖추고 있지만, 컷의 연출 또는 컷의 모양 등이 당시 같이 연재 중이던 <맥시멈 라이드>와는 다른 모습을 띠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동안 미국인의 정서에 맞는 작품을 해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자란 저의 정서가 많이 묻어나길 바랐고, 판타지적인 소재가 주주제였지만 그만큼 더 리얼한 상황을 독자들이 느끼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의상 또는 교복의 모양, 말투 등을 동시대적인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긴 시간 동안 흑백에 익숙한 작업자였기에 <허니 블러드>의 컬러 작업이 매우 즐겁고 광범위한 가능성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던 거 같아요. 제가 시작부터 완결까지 꾸준히 신경 쓴 컬러 연출은 주인공의 내레이션의 컬러였습니다. 처음 왕따를 당하고 우울한 삶을 지내던 여주인공의 내레이션 배경이 ‘검은색’이었지만 점차 남자주인공을 통해 사건에 맞추어 색을 점점 빼내고 완결에는 평범한 ‘화이트’ 배경의 내레이션이 되었거든요. 가끔 눈치채신 독자님들도 계셨기에 매우 뿌듯했던 기억이 있네요.

 

🎤 웹툰 <허니 블러드>가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당시 로맨스 하면 ‘벽쿵(카베동)’이라는 장르와 강한 남자의 매력이 어필된 캐릭터들이 매우 인기가 많았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좀 더 강아지 같고, 다정한 남자 캐릭터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강하지만 여자주인공을 위해서 참을 수 있고, 지켜줄 수 있는 그런 남자요. 아무래도 당시에는 흔한 남자 주인공 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독자님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웹툰이란 어떤 웹툰일까요?

💬 그리는 내가 재밌는 웹툰이 제일 좋은 웹툰이라고 생각됩니다. 가끔은 대중들이 관심 없는 소재거나 돈, 또는 남들에게 보이는 성적순이 아닌 만들어내는 제가 즐겁고, 그 만화가 당당하게 재밌다면 그것만큼 좋고, 완벽한 웹툰은 없다고 생각되어요. 그리고 그릴 당시에는 사람들이 몰라주어도 언젠가 독자들과 작가가 교집합을 이뤄내는 시기가 찾아온다면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생각하거든요.

 

🎤 청강 만화스쿨 후배들에게 대학 생활 때 이것만은 꼭 해라! 조언 부탁드립니다.

💬 후배님들!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두려워 말고 지금 하고 계신 작품을 포기하지 말고 꼭 완성하세요!! 그러면 기회와 행운은 꼭 찾아옵니다.


인터뷰‧정리 : 조희정(웹소설창작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