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KMC_Critic : 제가 호러 잘알못인데 뭐부터 보면 좋을까요?

영화 ‘드래그 미 투 헬(Drag Me To Hell, 2009)’ / 출처 : Daum 영화


나는 호러 작품을 잘 못 보는데 호러 장르의 팬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문장 그대로다. 나는 무서운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 어둡고 축축한 분위기와 함께 고조되는 음향, 순간 심장을 내려앉게 하는 점프 스케어 장면들에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극장에서 호러 작품을 관람하는 건 되도록 피하고 싶고, 오랜 기다림 끝에 OTT 서비스로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TV와 한참을 떨어져 소리를 적당히 줄인 채 본다. 호러 고인물들은 이런 나의 관람 태도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왜 호러 장르의 팬임을 자처하는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소싯적 무시무시한 공포영화 예고편을 손가락 사이로 엿보던 시절이 지나고 어느 정도 호러의 세계를 영접할 수 있는 적당한 어른이 되었을 때 그간의 인내를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 참 많은 호러 작품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다른 장르에서 느낄 수 없는 호러 장르의 참맛을 알았고 지금도 여전히 알아가는 중이다. 학생들에게 호러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나의 벅찬 경험을 전해주고 싶어 두근두근하지만 그런 나도 딱 막히는 순간이 있으니,

 

“그래서 교수님, 제가 호러 잘알못인데 뭐부터 보면 좋을까요?” 

배가 고파 가장 가까운 식당에서 적당한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메뉴를 고르는 상황이 아니다. 나의 추천이 앞으로 이 학생의 호러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서 메뉴 선정은 필사적이어야 한다. 살아온 인생 절반의 시간을 반추한 끝에 떨리는 심정으로 고른 작품은 ‘드래그 미 투 헬(Drag Me To Hell, 2009)’이다.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너무 맵지 않아야 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호러 장르가 어느 정도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장르다 보니 이쪽 고렙들은 뉴비들에게 가혹한 작품을 권하는 경향도 있다. 맵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에게 이게 뭐가 맵냐며 캡사이신을 한 바퀴 두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일단 시작은 어떤 라면 순한 맛 정도가 좋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드래그 미 투 헬]은 아주 적당한 맵기를 자랑한다. 호러 장르가 갖춰야 할 덕목들을 잘 갖추면서도 그 세기 면에서는 초보자들도 충분히 견딜만한 비쥬얼만을 선사한다.

 

2. 가능하면 원조 맛집이 좋다.

샘 레이미가 [드래그 미 투 헬]을 가지고 나왔을 때 환호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누군가. 많은 사람에게 과거 스파이더맨 3부작의 감독으로 더 잘 알려졌지만 그의 태생은 호러다. 80년대 초반 이블데드로 젊은 천재 호러 작가의 탄생을 알렸고, 스플래터 장르의 시작을 선언한 그가 다시 만든 호러 영화라니. 2009년에 만들어서 지금의 젊은 관객이 보더라도 크게 예스러운 느낌도 없을뿐더러 본래 놀던 물로 돌아온 호러 작가의 여전한 실력을 감상할 수 있다.

 

3. 그래서 맛은 있나요?

호러는 불안을 창조하는 장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본인의 어떤 선택으로 인해 3일 동안 저주를 받다가 지옥으로 끌려갈 입장에 처한 상황이다. 당연히 주인공은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이러한 주인공의 3일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인데, 이 짧은 시간 동안 주인공에게 선사되는 불안 종합선물 세트를 목격하고 있자면 어떻게 호러를 만들어야 하는가의 질문에 좋은 대답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게다가 놀랍게도 웃기기까지 하다. 무슨 말이냐고? 맛있다는 이야기다.

 

한 작품만을 선택해야 하다니, 피를 토하는 룰이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서 모든 분에게 재밌는 작품일 거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본인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호러 장르와 영원히 결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호러의 세계는 넓고 깊다. 그 안에서 도사리고 있는 심연의 공포를, 나를 즐겁게 하는 고통을 독자 여러분들도 발견하시길 바란다.(*)


글 : 이현수(웹툰만화창작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