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KMC_Interview]웹소설창작전공 19학번 송진열

<중대장은 너희에게 회귀했다>

웹소설창작전공에 재학 중인 신인 웹소설 작가의 데뷔작 연재기, 들어보실래요? 


청강대 만화콘텐츠스쿨 웹소설창작전공은 2019년 신설되었다. 전공 첫 입학생인 19학번이 올해 3학년으로 내년 졸업을 앞두고 있다. ‘처음’이라는 양가적 함의에도 불구하고, 신설 학과의 첫 번째 학번인 웹소설창작전공 3학년생들의 업계 진출 성과는 눈부시다. 학생들은 크고 작은 성취의 비결로 실력있고 소통하는 교수진 및 커리큘럼을 전공 최대강점으로, 웹소설과 웹툰 등 웹콘텐츠 업계의 성장세와 진로 비전, 탄탄한 창작자 네트워크를 손꼽았다.

<월간CKMC> 4호에서는 만화콘텐츠스쿨 웹툰만화콘텐츠전공에서 웹소설창작전공에 전과해 2년 반의 담금질을 거쳐 현재 네이버 웹소설 심사를 앞두고 있는 퀸즈 작가 - 19학번 송진열 학생의 ‘신인 웹소설 작가의 데뷔작 연재기’를 싣는다. CP사와 계약 후 6개월 동안 아무 작품도 못 쓰고 계약 상태에만 묶여 있다가 최근 네이버 웹소설 심사를 통과하고 매열무로 갈지 정식연재로 갈지의 선택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자신이 어떻게 슬럼프를 통과했는지의 여정이 담겨 있다. 이 인터뷰는 송진열 학생이 포스타입에 연재한 ‘CK 창의 프로젝트’ 포스트와 작년에 진행한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Q. 안녕하세요. 독자분들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 안녕하세요. 저는 송진열, 필명은 퀸즈입니다. 뉴욕 퀸즈에 여행 갔을 때 웹소설을 쓰기로 결정해서 그렇게 지었습니다. 저는 10, 20대를 타겟으로 한 소설을 씁니다. 특히 어두운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쓰는 이야기의 공통된 메시지는 ‘우리가 원하는 환상은 사실 그렇게 아름답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는 잘 살아남을 거야.’입니다.
 
Q. 현재 네이버 웹소설 심사 중인 작품 이야기부터 할까요. 제목이 <중대장은 너희에게 회귀했다>죠, 작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합니다.


💬 작품을 처음 집필하기 시작할 때 이야기부터 해드릴게요. 제가 가지고 있던 소재 세 개를 동시에 진행해 봤습니다. 버리려고 했던 소재에 미련이 남아서 그랬습니다. 하지만 모두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일단은 1화씩 써 보고 결정하자는 판단이었습니다.
하나는 초기 설정이 복잡해서 탈락. 하나는 반대로, 너무 단순하고 흔해서 탈락. 마지막으로 남은 건 보류였습니다. 전쟁이 배경인 판타지 소설. 수천 명의 목숨을 눈앞에서 잃어버린 게 트라우마인 주인공이 회귀해서 동료들을 구하는 내용입니다.
그 소설을 보류한 까닭은 군대가 주요 필드인 만큼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게다가 주인공은 인물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이 많아질수록 이야기는 복잡해질 것이고. 나는 그걸 잘 해낼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도 셋 중 살아남은 단 하나인데, 버리긴 아까워서 교수님께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교수님의 피드백, 솔루션이라고 해도 될 거 같은데요. 주인공의 목적이 '구한다'이기 때문에, 한 명을 구하면 나머지 수많은 동료가 함께 구해지는 구조를 만들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연 몇 명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을 철저히 엑스트라로 분류해도 끌고 나갈 수 있다고요.

그 말에 깨달음을 얻어 그 소설을 진행해 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기획서를 먼저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졸업 작품으로 쓰일 거기 때문에 기획서가 필수이기도 하고 네이버 시리즈 심사도 넣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제목. <중대장은 너희에게 회귀했다>. '중대장은 너희에게 실망했다'라는 밈을 써 먹은 제목입니다. 하지만 알 사람만 아는 밈인 게 조금 신경쓰지만, 지금은 뭐가 됐든 재미있게만 쓰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목 다음은 로그라인. '전투의 천재였지만 부상으로 능력을 잃은 주인공이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전쟁을 끝낸다'. 뭔가 참신한 맛이 없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정말 그런 이야기니까. 또 설정을 최소화하고 특별한 소재를 잡지 않는다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오히려 만족스럽기도 했습니다. 타겟층은 20대에서 30대 남자. 분량은 300화 쯤 잡았습니다.
제목, 로그라인, 타겟층과 분량이 나왔으니. 다음 해야 할 일은 줄거리를 요약하는 겁니다. 작품 줄거리는 기승전결로 정리했습니다. 당연한 일 같지만 '결'이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결말을 잡고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줄거리를 정리하는 건 꽤 많은 고민이 필요하죠.
그 후는 세계관 및 주요 설정. 여기서 제 컨셉은 '최소화'가 됩니다. 언제나 여기서 무리했다가 망했기 때문에, 이걸로 되나 싶을 정도로 줄이는 게 목표였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나중에 특별한 세계관이나 설정들이 공개된다고 해도 기획서에 굳이 적어야 할 이유가 있나 싶긴 합니다. 기획서를 검토하는 사람들은 대중성과 상품성을 원할 텐데. 신인의 특이한 세계관이 담긴 소설은 당연히 그들이 원하는 방향이 아닐 겁니다.
중요한 건 '나중에'다. 그런 게 있다고 한들 2권 쯤에나 쓸 거 같습니다. 그래서 난 세계관 한 줄. 설정도 한 줄로 끝냈습니다.

마지막은 제가 가장 공들이는 캐릭터. 기획서에는 주인공, 조력자, 라이벌, 적대자. 이렇게 네 캐릭터만 정리합니다. 라이벌은 쓰지 않을 때도 있지만 있다면 주인공이 선망하고 동경하는 캐릭터로 설정하는 편입니다. 캐릭터는 외모와 성격은 기본이고. 욕망, 동경 요소, 공감 요소를 넣습니다. 욕망은 공백으로 뒀다가 피를 많이 봤기 때문에 특히 집중하는 부분이죠. 이렇게까지 기획서를 쓰면 끝. 이젠 원고를 쌓기만 하면 됩니다. [더 보기]



Q. 이후 웹소설 집필 과정에서 CP사 계약과 플랫폼 심사까지, 이른바 ‘신인 웹소설 작가의 데뷔기’를 포스타입에 연재하셨더군요. 근데 포스트에 ‘CK 창의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이 붙었어요. 이게 뭔지 설명해 주세요.


💬 이 CK창의프로젝트라는 건 청강대에서 3학기 이상 수여했으며, 회사에 취업한 학생이 일과 학교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에요. 주간 보고서를 써서 제출하고 심사에서 통과되면 15학점 이수가 인정되는 방식이죠.

간단히 말해 학점을 줄 테니, 일 때문에 휴학하지 말고 학교에 나와라. 저 같은 경우는 심사에서 떨어지면 15학점이 고스란히 날아가고, 올해 졸업을 못 한다는 커다란 리스크가 있지만 연재도 포기 못 하고 졸업도 포기 못 해서 CK창의프로젝트를 선택했습니다. 제 프로젝트명은 <신인 웹소설 작가의 데뷔작 연재 과정>입니다.


Q. 처음부터 웹소설창작전공에 입학한 건 아니었죠? 웹툰만화콘텐츠전공에서 웹소설창작전공으로 전과한 ‘첫 기억’이 궁금하네요.


💬 웹툰 전공에서 웹소설 전공으로 전과할 때 면접을 거쳤어요. 학기당 전과 가능한 인원이 3명인데 지원자가 나 혼자라, 브레이크 댄스를 추면서 면접실에 들어가도 패스되는 자리였죠. 그런 건 못 추지만, 아무튼. 교수님께서 어떤 웹소설을 즐겨봤냐고 질문하셨어요.

내가 읽은 웹소설이라곤 제목이 이상해서 봤다가 취향에 맞아서 놀랐던 작품. 카카오페이지, 로시원 작가의 <적기사는 눈먼 돈을 좇지 않는다>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완결이 아니라 10화까지. 살면서 읽은 웹소설은 10화 분량이 전부라는 의미에요. 당시 구독자 수가 10만 명쯤이었는데 인지도가 없어 보이기도 했고, 제목도 너무 길었습니다. 마이너한 사람으로 보이는 게 왠지 쑥스러워서 그 작품 대신 <전지적 독자 시점>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교수님들은 ‘다 너처럼 말하더라’ 같은 표정이었죠.

일부러 유명한 작품 이름을 말했는데, 오히려 더 수치스러워졌습니다. 다행히 그다음 질문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어요. 두 번째 질문, 웹툰과 학생인데 웹소설 써 본 적은 있냐. 문피아 무료연재로 50편을 써 봤다고 힘줘서 답했어요. 이어지는 질문. 성적이 어땠냐,에는 매일 연재하면 하루에 한 명만 봤다고 했습니다. 그 한 명이 친구였다는 건 차마 말하지 못했죠.

정리하자면, 업계 부동의 1위 작품이었던 <전지적 독자 시점>은 1화도 본 적 없고. 판타지를 쓰는 주제에 읽은 웹소설은 로맨스판타지 10화 분량이 전부. 그런데 문피아 일일연재로 50편은 썼어요. 아니, 사실은 25편이었죠. 그 소설을 쓸 당시 전 한 편 기준이 5,000자인지도 몰라서 한 편에 10,000자를 넘겼거든요. 더 어이없는 건 그땐 또 공백 미포함으로 글자 수를 계산했습니다.

다시, 더 짧게 정리하자면. 근본도 없고 기본도 안 된 놈. 그게 스무 살의 나였어요. 아무것도 몰라도 뇌 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기만 하면 행복했습니다.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Q. 첫 연재작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군요.


💬 저는 내가 천재인 줄 알았어요. 독자가 딱 한 명 있던 소설을 중단한 후. 문제점을 보완하고 시작한 소설로 곧장 한 매니지먼트 회사의 컨택을 받았으니 그랬습니다. 그 회사를 탓할 생각은 없지만, 그로 인해 내가 웹소설을 더 쉽게 보고 건방져진 건 확실했죠.

그 회사는 내 작품이 좋다는 말 대신 캐릭터를 잘 잡는다고 했어요. 스스로도 자신 있는 분야라, 가치를 인정 받은 거 같아 기뻤습니다. 잠깐 같이 일을 했는데, 웹소설 문법이 아니다, 웹소설을 읽어 보기는 했냐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 소리만 온종일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요.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같이 원고를 쌓는 와중에도 난 웹소설을 단 한 편도 보지 않았습니다.

별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고집부린 건 아니었어요. 그저 웹소설 볼 시간에 유튜브 영상 하나 보는 게 더 재밌었습니다. 전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고, 그 회사는 당연하게도 날 멀리했습니다. 피드백이 점점 늦어졌죠. 그 순간부터는 누가 더 연락을 늦게 보고, 무시하느냐 싸움이었습니다. 결과는 내 메일이 마지막으로 무시당하면서 끝을 맺었습니다.


Q. ‘그랬던’ 시절. 당시 뭐가 문제였을까요?


💬 전 웹툰 전공이었지만 연재도 해 봤고 컨택도 받아봤습니다. 전과한 웹소설 전공에서 누굴 만나든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죠. 그리고 그 자신은 첫 주부터 처참하게 박살 났습니다.

크리틱을 같이 듣는 조원들은 교수님께 칭찬을 받았고, 저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특강 오신 작가님, PD님도 똑같은 반응이었습니다. 다들 재미없다는 말을 돌려말하는 데 신경 써 주셨던 거 같아요. 좋은 매니지먼트 회사에 들어가서 일찍 데뷔하겠다는 내 꿈은 그때부터 바뀌었습니다. 2학년 1학기가 끝날 때까지 교수님께 칭찬 한 번 받기. 그 정도로 소심하고 동시에 절박해졌습니다.

칭찬 한 번. 그게 작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첫 번째 계단처럼 느껴졌어요. 동기들은 전부 지나갔는데, 나만 못 밟은 계단. 그때부턴 놀랍게도 웹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렇다고 많이 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0화가 전부인 웹소설 인생에, 100화 정도로 늘어났을 뿐. 그렇게 깨져도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그런데 칭찬 한 번. 피드백 받은 대로만 했더니 들을 수 있었어요. 눈물 날 정도로 기쁜 날이었습니다. 그때부턴 승승장구였죠. 수정하라는 것만 수정하면 재능 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뭔가 잘못되기 시작했어요. 애초에 뭐라도 쓰면 행복한 사람이 글 쓰는 데 재미를 붙였으니. 읽는 즐거움은 더욱더 작아졌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거들떠보지도 않게 됐죠.

나는 독자가 아니라 ‘작가’였으니까요. 열정적인 독자(소비자)에서 작가가 되는 과정이 일반적이지만, 행운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 과정을 뛰어넘었습니다. 그 순간부터는 후회뿐이었습니다.

문제점은 하나뿐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누구보다 열정적이어도. 웹소설에 가까워지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피드백도, 눈치챘겠지만 하나밖에 없었어요. 웹소설을 읽는 것.


Q. 깨달음의 순간이군요. 자,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죠.


💬 중3 중간고사 이틀 전에 우연히 이시다 스이 작가의 <도쿄구울>을 봤는데, 공부는 팽개치고 만화만 봤다고요. 그때 전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할 때였는데, 만화 주제에 내 성적을 망쳐놓는 게 같잖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난 이야기의 힘이라는 걸 맹신하다시피 했어요. 나도 누군가의 성적을 망치고 싶었죠. 그만큼 매료되는 이야기를 쓰는 게, 내 길이라고 정했습니다. <도쿄구울>은 롤모델이었으며, 로망이었어요. 왜 내 작품 얘기를 하기 전에 <도쿄구울>을 말하는지는 그 작품 설정에 있습니다.

<도쿄구울>의 꽤 어두운 세계관 안에는 도쿄에 식인종, ‘구울’이 있고 구울을 사냥하는 기관, ‘CCG’가 있으며. ‘CCG’ 구성원들을 ‘수사관’이라고 부르는데, 또 ‘1등 수사관’, ‘특등 수사관’, 이처럼 계급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특이한 세계관, 계급이 있는 특수기관. 그 이야기를 사랑한 건 덫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다시 제 실패담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내가 처음 쓴 소설이 어떤 방식이었는지 예상될 거였죠. 나만의 세계관이면서 주인공은 특수한 기관의 일원이었습니다. <도쿄구울>처럼. 그렇다고 <도쿄구울>을 표절할 순 없으니 이것저것 설정을 바꿨습니다.

그렇게 3화 원고를 쌓고 교수님께 보여드리니, ‘설정을 보여주려고 하는 소설’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나타내려고 만담을 많이 집어넣었더니, ‘유치하다’라는 말까지 들어야했죠. ‘웹소설이 아니다’라는 건 당연히 포함됐습니다.

맞는 말씀이었어요. <도쿄구울>의 플롯을 흉내 낸 게 아니라, 설정만 엇비슷하게 맞춰 보려고 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보면 작가가 설계한 이야기와 캐릭터, 설정과 세계관이 합쳐져서 <도쿄구울>이 탄생한 거지만, 난 그 작품에 나오는 설정과 세계관만이 <도쿄구울>이라고 착각한 거죠.

그 착각으로 인해 내가 쓴 건, 세계관과 설정을 보여주기 위해 주인공의 눈을 빌린 소설이었습니다. 모르는 말과 설정을 주입하려는 거처럼 굴었으니, 흥미가 아니라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요.

다음은 ‘유치하다’는 말. 주인공과 주인공 주변 인물들이 농담을 많이 하는데, 그 농담으로 설정을 설명하고 복선을 숨겨 둔 방식이었습니다. 만담이라서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간 대화문에 중요한 내용이 섞여 있는 것. 당시엔 그게 세련돼 보였습니다.

중요한 건 그 방식이 아니라, 주인공 만담 상대가 누구냐였죠. 그 주변 인물들이라는 것들은 이야기 안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어떠한 캐릭터를 ‘조력자’, ‘적대자’처럼 부르듯이. 이야기 안에서 분명한 기능을 소화하는 게 아니라, 농담 상대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바꿔 말하면 안 나와도 상관없는 캐릭터였던 거죠.

주인공이 쓸데없는 캐릭터들과 대화를 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그 방식은,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묻는 거처럼 보였습니다. 그건 곧 ‘유치하다’는 평으로 돌아왔습니다. 즉, 설정과 세계관을 보여주려고 주인공의 눈을 빌렸으며, 다른 캐릭터들은 아무런 기능도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웹소설이 아니라는 말은커녕 소설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난 두 가지 문제점을 알았습니다. 다음부턴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쓴 게 <모험가들의 인간 중독>이라는 소설. 제목부터 애매하고 뭘 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건 넘어가고요. 제목도 문제지만, 망한 이유에 제목만 포함되는 게 아닙니다.

설정과 세계관을 보여주려고 하는 소설은 아니었습니. 모든 캐릭터를 기능에 맞게 넣었어요. 그 소설은 내 가능성이 처음으로 나타난 소설이었습니다. 그런데 망했습니다. 주인공은 포션으로 돈을 벌고 사업을 확장합니다. 포션 성능으로 전투에서 승리하기도 하며, 명예를 얻기도 합니다.

다만 그전에, 주인공이 그 모든 성공과 보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13화까지 진행됐지만 단 한 번도 주인공은 자신이 얻은 것들을 사전에 바라지 않았죠. 애초에 목적이 없고 욕망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독자들이 그 이야기를 지켜봐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죠.

주인공이 뭘 하긴 하는데, 그것들로 인해 느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없으면 주인공이 한 세계의 인물로 보이기 전에, 작가가 만든 캐릭터가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작가가 쓴 이야기를 보는 게 아니라, 작가의 창작 과정을 지켜보는 거 같은 기분.

그리고 문제점을 하나 더 알게 됐습니다. 뭔가 루프물 같은데, 실제로 난 같은 실수를 여러 번 반복했어요. 특이한 세계관과 설정을 넣으려고 해서 걷어차인 게 앞으로 네 개는 더 있고, 주인공의 욕망이 드러나지 않은 게 세 개쯤. <도쿄구울>이라는 덫이 문제가 아니라 내 지능에 문제가 있는 거처럼 느껴졌습니다.

배운 게 있다고 한들 나아가는 게 아니라 같은 실수만 반복했습니다.


Q. 실수를 깨닫고 어떤 시도를 했나요?


💬 2020년 하반기. ‘리스트’가 만들어지고 달라졌어요. 내가 직접 작성한 체크리스트. 체크리스트를 만들게 된 과정은 내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시작됐습니다.

<웹소설 창작 실습2>. 디앤씨미디어가 그 수업에서 4주간 특강을 할 때였습니다. 1지망 회사인 만큼 난 4주간 모든 걸 쏟아부을 걸 다짐했습니다. 먼저 특강 오신 부장님께 첫 주차에 내 이름이 똑똑히 기억되게 하는 게 목표였는데, 보기 좋게 성공했죠. 처음으로 잘 됐던 얘기를 하는 거 같았습니다.

어떤 작품을 준비할지 계획했습니다. 디앤씨미디어에 가고 싶은 만큼. 디앤씨만을 위한 작품을 써야 할 거 같았어요. 내가 쓴 게 디앤씨 작품처럼 보이기 위해, 디앤씨에서 성공한 작품들의 공통점을 전부 집어넣기로 했습니다.

카카오페이지 랭킹 100위 안에서 연재 중인 디앤씨미디어 작품, 총 일곱 작품을 찾아내서 읽었습니다. 메모장을 켜서 그 작품들의 특징을 적은 다음, 공통점을 분석. 해시태그 중에 겹치는 게 있으면 그것도 공통점에 포함했죠. 그런 식으로 분석하다 보니 ‘공통점 체크리스트’가 만들어졌습니다.

성공한 작품들 공통점을 내 작품에도 전부 넣었으니, 내 소설이 얼핏 디앤씨에서 원하는 작품처럼 보이게 속이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벼락치기 같은 수법은 결국 들통났어요. 하필이면 그때 ‘세계관과 설정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내 고질적인 문제점을 드러낸 거죠.

디앤씨미디어 체크리스트는 있었지만, 내 실패 경험이 바탕이 되는 체크리스트가 없었습니다. 그렇게나 치밀하게 준비한 주제에 내 실패는 돌아 볼 생각조차 안 했던 겁니다. 그다음엔 다른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디앤씨 체크리스트가 ‘더해야 할 것들’이라면, 실패를 바탕으로 만든 건 ‘빼야 할 것들’ 리스트였습니다. 내 단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수없이 들었으니까, 그 리스트를 만드는 건 쉬웠습니다.

그리고 디앤씨 체크리스트를 업데이트. 교수님께서 말씀하셨거나 수업에 배운 내용으로 ‘더해야 할 것들’ 리스트를 변경했습니다. 그 후엔 내가 생각한 소재,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그 두 체크리스트에 대입했습니다. 그 두 가지 리스트를 믿고 쓴 소설이 나왔을 땐 계약까지 할 수 있었어요.

여태 내가 쓴 것 중에 실패한 소설들을 지금 ‘더해야 할 것’이나 ‘빼야 할 것’ 리스트에 대입해보면 대부분 안 맞습니다. 내 리스트에 전혀 대입되지 않아도 성공한 작품들은 수두룩하게 많지만, 적어도 스스로 내 리스트에서 벗어났을 때 좋은 반응을 얻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인터뷰·정리 : 조희정(웹소설창작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