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KMC_Interview]웹툰 스토리 작가의 일 - <정년이> 서이레 작가

지난 4월 28일, 네이버 웹툰 <정년이> 스토리 담당 서이레 작가님이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을 방문했다. 특강 참석자가 300명이 넘을 정도로 뜨거운 학생들의 관심 하에 특강이 진행되었다. 이하 인터뷰는 서이레 작가님의 특강을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Q. 반갑습니다, 작가님. 이미 모두가 아시겠지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웹툰 스토리 작가 서이레입니다. 저는 2015년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VOE>라는 작품으로 데뷔를 했습니다.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 <정년이>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Q. 스토리 작가로 어떻게 데뷔하게 되셨나요?

💬 저는 국어국문학과 출신입니다. 사실 선 하나도 제대로 긋지 못할 정도로 그림은 잘 몰라요. 사설학원에서 스토리 창작을 배우다가 한 번 웹툰 스토리 작가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Q. 학생들의 여러 질문이 있었지만 가장 많은 질문은 바로 창작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정년이>라는 작품을 어떻게 구상하시게 되었나요?

💬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만들 때 ‘영감’ 이야기를 참 많이 하시는데요. 문제는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아무리 기다려도 영감님은 잘 오지 않아요. (웃음) 어느날 갑자기 여성국극을 배경으로 한 이러이러한 웹툰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보통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한 순간에 떠오른다고 생각하시는데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나를 구성하는 여러 키워드가 합쳐지면서 이야기의 틀을 잡게 되는 듯 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원래 1920-1950년대에 관심이 무척 많았습니다. 해당 시대는 신식과 구식 등 많은 것들이 혼재되어 있는 시기였는데요. 신여성, 다방 여급, 최초의 단발여성 등 다양한 시도가 시작되는 시기였어요. 다방 여급이 에이프런을 하고 있는 사진이나, 이화학당에서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체조를 하는 사진을 보면서 참 재밌는 시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연극을 자주 보러 다니고 무속신앙과 신화를 좋아해서 무가와 판소리 같은 민속 음악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 <씨엘>, <불의 검> 같은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저 세 키워드가 제 안에 갖춰져 있을 즈음에 여성국극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1920~1950년대 조선과 연극과 판소리 예술 여성의 키워드가 연결되면서 <정년이>가 탄생한 거죠.


Q. <정년이>의 창작 배경 이야기 정말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아까 말씀하시면서 나온 ‘영감’은 결국 어디서 오는 걸까요?

💬 이야기는 하나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영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가지는 여러 관심사, 키워드가 얽혀 탄생합니다. 별이 아니라 별자리 같은 거예요. 그래서 만약 이야기를 만드는데 어려움을 가지시는 분이라면 좋아하는 관심사를 열어두고 계속해서 지켜봐주세요. 폭 넓은 취향을 기르고 ‘나’라는 사람을 잘 채워놓으시면 좋겠습니다. 영감이 온다면 그것은 바로 작가 자기 자신에게서 오는 것 같습니다. 


Q. 이야기를 구상하다보면 제일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게 바로 자료조사인데요. 작가님께서는 자료를 어떤 식으로 찾고 구상하셨나요?

💬 많은 분들이 자료로 이야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 때 하는 실수가 자료만으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 점인데요.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신화를 재창작할 때 신화를 가져와서 어떻게 해보려고 하세요. 하지만 이야기 없이 신화를 가져오면 단순한 설정집, 세계관 창작을 넘기 어렵습니다.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자료에 없습니다. 우리 머리에 있죠. 그렇기 때문에 자료로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지 마시고, 인물, 사건, 배경을 만들어둔 다음에 자료를 찾아 가공해야 해요.

<정년이>에는 남역 대배우 문옥경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어마어마한 팬덤이 필요한 물건을 다 사줘서 제 손으로 물건을 산 일이 없죠. 하지만 구구절절 인기가 많다고만 말하면 얼마나 많은지 잘 감이 안 오잖아요? 이때 실제 여성국극 배우이신 조금앵 선생님의 사진 촬영 에피소드를 가져왔습니다. 조금앵 선생님은 팬의 부탁으로 예식장에서 가상 결혼식을 올리고 사진을 찍은 일이 있으셨거든요. 이 에피소드를 활용해서 문옥경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조금앵 선생님 사진을 가지고 문옥경을 만든 것이 아니라, 문옥경을 먼저 만든 후 당시 인기 있는 남역 배우는 어떤 생활을 했는지 찾았다는 거죠.


출처 : 한국일보, <여성국극, 마지막 배우와 함께 스러지다>, (오미환 기자, 2012.08.07)


Q. 정말 중요한 말씀이셨어요. 그럼 혹시 학생들에게 어떻게 자료를 찾으셨는지 간단하게 팁을 주실 수 있을까요?

💬 다 아시고 계실 것 같긴 한데…(웃음)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가셔서 키워드 검색하시면 1950년대 신문도 찾아볼 수 있어요. 그것도 잘 활용했고요. 다른 책, 논문, 문화콘텐츠닷컴, 한국영상기록원 등 자료가 있는 곳은 참 많습니다. 특히 만화는 이미지 작업이기 때문에 사진 자료가 필요하잖아요. 구글에서 검색하실 때 한국어로만 하지 마시고 영어나 일본어로 검색하면 더 다양한 자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참, 그리고 레퍼런스가 될 같은 소재를 다룬 앞선 작품들도 보시는 것도 좋아요. <정년이>의 경우는 <춘앵전>과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과 같은 선배 작품이 있었습니다.


Q. 레퍼런스가 되는 작품을 찾아보는 노력을 많이 해봐야겠네요. 최근 협업 시스템이 늘면서 학생들의 스토리 작가에 대한 관심도 많은데요. 스토리 작가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협업을 하시나요?

💬 일단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서로의 영역을 정확히 확인하고 협의해서 나누는 게 필요합니다. 대화를 많이 하셔야 해요. 콘티는 글로 해야하나, 그림으로 해야하나. 최종 업로드는 누가 할까, 식자는 누가 할까, 고료는 어떻게 나눌까 등 딱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배를 탄 사람들끼리 많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여기서 스토리 작가가 해야한다고 딱 정해져 있는 것은 기획서 작성, 트리트먼트, 그리고 콘티가 있습니다. 저는 글콘티로 작업을 하는데, 저의 경우 드라마 대본이나 시나리오, 희곡을 보고 좀 더 공부를 했어요. 지시문을 정확하게 써서 캐릭터의 행동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장면에 대한 서술을 통해 이미지로 전달하려 했습니다. 웹툰 글콘티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대사와 그림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대사도 많이 공부하는 편이에요. 특히 웹툰에서 대사는 길면 재미를 조금 떨어뜨리지 않나 생각합니다. 대사가 보다 서사를 잘 농축시킬 수 있도록 여러 번 다시 쓰곤 합니다. 물론 웹툰 한 편에서 기승전결이 분명해야 하고, 마지막에 다음 편이 궁금하도록 훅을 걸어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죠.


Q. 협업할 때 이것만은 꼭 해야한다라는 게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 글, 혹은 그림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어요. 혹은 플랫폼을 두 군데 중에서 한 군데를 정해야 한다거나와 같이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생깁니다. 서로 의견이 엇갈리더라도, 시간을 들여서 서로의 의견을 물어봐야 합니다. 이 시간을 절대 아까워하시면 안돼요. 많이 대화를 하고, 서로를 믿어야 좋은 협업이 가능합니다.


Q.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작가님. 마지막으로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꾸준함이야말로 정말 어려운 일임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오랫동안 작품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겠죠. 우리의 목표는 요절하는 천재작가보다 작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창작노동자이니만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돌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건강한 작가생활을 응원합니다.(*)



정리 : 문아름 (만화콘텐츠스쿨 만화웹툰창작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