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살펴봐도, 많은 작가(또는 학생)들이 이미지를 표현할 때 각자가 익숙한 명도 단계를 일정하게 활용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눈이 사물을 지각할 때 빛이 바뀌었더라도 항상 같은 물체로 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런 현상을 '항상시(恒常視)'라고 합니다. 명암에 관계없이 물체가 가지고 있는 모양이나 물질성에 변화가 없으면 동일한 물체로 보려는 경향을 말하죠.
어둑한 방 안에 놓인 사과는 결코 붉은 색일리 없겠지만, 무심코 붉은 물감을 칠하기 시작하는 것 역시 항상시가 작용하기 때문이예요. 이미지보다 대상을 개념적으로 지각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경향은 사물의 이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대상의 미묘한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빛의 변화에 따라 물체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시각 이미지를 표현하기 어렵단 뜻이겠죠?
우리가 이론을 통해 다양한 명암의 단계와 그에 따른 정서에 대해 공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전에 주변의 사물을 진지하게 관찰하고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명암의 차이와 감정을 읽어내는 연습이 꼭 선행되어야하는 이유입니다.
작화를 시작하면서 구도나 명암에 대한 계획을 간과하고 무작적 캐릭터부터 그려넣는 습관도 당연히 문제지만, 진지하고 꾸준한 관찰을 통해 심미안을 키우지 않은 채로 이론에만 기대는 것 또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점이죠.
진심으로 부탁드리건데...늘 주변을 관찰하고 드로잉하세요. 모든 조형 연습의 시작이랍니다.